최우수
Jan 23,2020
라이프 스타일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한 기반
스토리
히로노 잇세이 씨는 게센누마 출신으로 선조 대대로 이 땅에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증조부는 과거 게센누마의 시장이었고, 부친은 히로노 씨도 현재 근무하고 있는 어업자재회사 <아사야 주식회사>의 6대째 사장이었습니다. 지진재해가 일어난 후, 게센누마에 돌아온 히로노 씨는 게센누마 특유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존하는 것이 자신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에 확신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히로노 씨는 게센누마 어업경제의 부흥 뿐만이 아니라 관광객을 유치하고 이 지역만의 특색을 세계에 전파하는 일에도 깊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 숫자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일본 전체의 버블 경제가 팽창하고 있던 80년대, 게센누마에 있는 산리쿠 해안은 어업버블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1984년에 이 지역의 어획량은 1300만 톤에 이르렀습니다. 이 상황은 돈벌이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고 있던 태평양의 전체의 어부들에 있어서 매력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버블 경제는 결국 붕괴하고 어획량도 계속해서 감소하게 됩니다. 현재의 어획량은 당시의 최고점에 비해서 약 1/3정도 입니다. 온난화나 해안건전도 저하, 게센누마에 직격한 쓰나미의 영향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당연하지만 어선을 타는 어부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으며 2003년에는 23만명이었던 어부의 숫자는 2017년 15만명으로 감소했습니다. 그만큼 새로운 사람으로 채우면 된다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에서는 샐러리맨이나 오피스워크로 대표되는 도시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편리하고 풍부하며 스타일리시한 동경(또는 다른 대도시)을 자신의 고향보다 매력적으로 느끼는 사람도 많습니다. 개중에는 어른이 되고 부모가 하고 있는 어부나 목수 일을 물려받아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일본에서는 주력산업 노동자가 감소하고 있는 반면 대체인력의 보충이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히로노씨도 당초에는 이 흐름에 동조하고 있었습니다. 오오사카와 동경에서 학생생활을 보낸 후, 그는 IBM에 취직 후 수년간 정사원으로써 근무를 했습니다. 그러나 지진재해 후, 그는 무엇인가에 이끌리듯이 게센누마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나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는 그렇게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부모와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결과, 기왕 시작한 IT 커리어를 위해 동경의 IBM에서 계속 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후, 자신의 소중한 고향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에 그가 견딜 수 없게 될 때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얼마 안 있어 히로노 씨는 별다른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채로 게센누마에 다시금 이주하게 되지만 금방 옛것과 새것을 잇는 흥미로운 역할을 맡게됩니다.
게센누마는 결코 작은 마을은 아니지만 굳이 말하자면 시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지방기업과 어부는 일종의 대면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으며 일솜씨에 대한 평가는 마을의 평판과 인간관계를 베이스로 하고 정보는 입소문 으로 공유됩니다. 히로노 씨는 그와는 정반대의 비즈니스 스타일의 업무환경에서 일을 해 왔죠. 그는 고용계약제도와 장기계획 비젼을 바탕으로한 글로벌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말하자면 그는 이 지역에서 태어났고 이곳의 스타일에 관한 지식과 함께 기업에서 근무한 샐러리맨으로서의 풍부한 경험도 겸비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인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캐릭터를 살려서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우리는 반쯤은 농담으로 게임에서 등장하는 기사인 동시에 마법도 사용 가능한 하이브리드 캐릭터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웃었습니다. 히로노 씨는 재빨리 복구작업의 장대한 비젼을 그리면서 비즈니스 모델 발전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직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일까>, <어떻게 하면 후계자를 찾을 수 있을까> 어업을 부활 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그리고 현지인 이외에는 잘 모르는 매력을 세상에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 그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현재 그가 힘을 쏟고 있는 일은 세 개가 있습니다. 아사야의 어업자재를 사용해서 게센누마를 지원하는 것, 인터넷 판매를 통해서 어획물을 외부로 판매하는 것, 그리고 국내외에서 어업을 보러온 새로운 세대에게 감동을 전달하고 실제체험을 제공하는 것. 히로노 씨는 게센누마의 여행업계에 있어서도 활동적이며 일본전국을 대상으로 어업관련의 워크숍에 참가할 의향이 있는 젊은이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것을 <맛보기>라고 부릅니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 또는 졸업후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 중 다수에게는 어업이나 농업 등에 도전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히로노 씨는 젊은이에게 있어 어업이야 말로 커리어라고 설득하는 건 아직 먼 훗날의 꿈이라고 말하면서도 애초에 어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발상이 없는 상태를 바꾸는 기폭제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일본 곳곳에서 세계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 전통기술이나 희귀한 일본의 공예기술을 보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젊은이의 흥미가 멀어져가고 있는 현상황에 더해 스피드와 저렴한 가격을 앞세우고 있는 공산품은 전통적인 생활스타일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어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나 게센누마의 역사 속에서 자연의 도전에 맞섰다는 사실은 어부의 강건한 라이프스타일을 계승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다 용감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게센누마에서 힘차게 타오르며 마을을 비추고 있던 활기라는 이름의 불꽃은 쓰나미에 의해 한순간에 꺼질 뻔 했습니다. 그러나 히로노 씨와 같은 사람들이 다시금 불을 키우고 여러 사람에게 전파하고 있습니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사람들의 가슴에도 불꽃이 옮겨 붙고 있습니다. 히로노 씨는 정말로 마법을 쓰는 기사임에 틀림없습니다!